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말해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영화 한 편을 본 것이 아니라 그날 광주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마음 깊이 마주한 기분이었습니다. 1980년 5월 우리가 너무도 쉽게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는 그 사건은 실제로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은 너무도 참혹하고 인간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왜 아직도 사람들은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걸까요? 그리고 왜 우리는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할까요? 오늘은 영화 화려한 휴가를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가 보려 합니다.
화려한 휴가 속 시민
이 영화를 보면 특별한 영웅은 나오지 않습니다. 택시 기사, 주유소 직원, 의사, 학생, 모두 어딘가에 있을 법한 내 주변 사람들 같은 인물들입니다. 처음부터 무언가 거창한 신념을 갖고 행동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놀라고 분노하고 그러다 결국 움직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김상경 배우가 연기한 민우라는 인물도 처음엔 그저 소극적인 청년일 뿐입니다. 하지만 동생이 죽고 친구가 다치고 진실이 은폐되는 걸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점점 달라집니다. 결국 그는 해야만 하는 일을 선택합니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힘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웅 서사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선택이 하나 둘 모여 역사를 만들었다는 걸 보여주니까요.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는 시민들이 함께 거리로 나서고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려는 모습입니다. 누구의 명령도 없었지만 모두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움직입니다. 그 연대감과 따뜻함은 차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결국 그날을 만든 건 위대한 리더가 아니라 서로를 지키고자 했던 수많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줍니다.
국가의 정의
화려한 휴가를 보다 보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도대체 국가란 뭘까? 영화 속에서 군인은 국민을 지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눕니다. 그것도 이유 없이요. 사실을 말하는 사람은 죄인이 되고 언론은 진실을 외면합니다. 이건 단순히 과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는 뉴스에서 사회 곳곳에서 비슷한 장면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가장 마음 아픈 건 명령을 수행하는 군인들조차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옳지 않다는 걸요. 하지만 명령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은 침묵했고 어떤 이들은 끝까지 양심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건 단지 1980년 광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해야 할 국가가 때론 권력 유지를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화려한 휴가는 이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며 관객에게 다시 한번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국가에 살고 싶나요?
기억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건 너무 오래된 이야기야",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지", "지금은 다르잖아."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잊어버리면 모든 게 끝나는 걸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반복은 늘 더 교묘하고 더 조용하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광주를, 5·18을,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 기억이 곧 방패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지금도 불편해합니다. 왜 자꾸 그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하지만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똑같은 비극을 다시 맞이하게 될 겁니다.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 장면, 희생자들의 얼굴을 하나씩 보여주는 그 장면은 참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건 단지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이야기였어요. 그들이 존재했기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합니다.
결론
화려한 휴가는 단지 과거를 추억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태도, 우리의 선택, 우리의 기억이 어떤 미래를 만들 수 있을지를 조용히 묻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질문에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혹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미 본 적 있다면 다시 한 번 마음을 열고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그 안에는 단지 한 도시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담겨 있으니까요.